탈무드가 기록한 '서기 30년'의 불길한 징조들
유대 대절기 중 하나인 속죄일(Yom Kippur)에는 성전에서 매년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한 의식이 행해졌다. 레위기 16장에는 이 제사의 개요 정도만 나와 있지만, 이 제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로 진행되었는지, 그를 둘러싸고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실제적인 내용은 제사의 상세한 절차 및 관련된 일을 기록한 탈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의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하여 각 염소의 역할을 정하는 제비뽑기를 한다. "이 염소가 더 건강하게 보이니 이놈을 제물로 올리자"하는 식의 인간적 판단을 배제하고 이 제사의 주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 개의 제비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다른 하나에는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각각 표기되어 있다. 대제사장은 제비가 든 함에 양손을 동시에 넣고 제비를 뽑아 각 염소의 역할을 정한다. 이때 '여호와를 위하여'의 제비가 제사장의 오른손에 뽑혀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신다는 길조로 받아들여져 성전 뜰을 메운 백성들은 환호하고 엎드려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며 기뻐했다. 그렇게 여호와를 위한 것으로 정해진 염소는 속죄제를 위해서 잡고, 그 피를 지성소와 중요한 곳들에 뿌린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한 것으로 정해진 염소는 그 뿔에 붉은 색의 양모 끈을 묶는다. 그리고 양손으로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염소에 전가한 후 광야로 몰고 나간다. 염소의 뿔에 묶었던 붉은 끈의 절반은 따로 취해서 성전의 문에 묶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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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Understanding the Day of Atonement or Yom Kippur |
끈의 색이 붉은 이유는 붉은색이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붉은 끈의 절반을 성문 앞에 묶어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목격하게 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목격하는가? 염소가 광야에 나간 후 묶어둔 붉은 끈의 색깔이 희게 변하는 표적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의 말씀과 연결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 1:18) 대제사장의 오른손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가 뽑혀 고조된 환희는, 이 죄사함의 표적이 목격됨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이 표적도 기적이지만 대제사장의 제비뽑기 역시 무작위적 운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제2성전의 영적 황금기라고 불리는 시몬 하차딕 제사장의 시대에는 여호와의 제비가 40년 동안 매년 오른손에 들려 나왔다. 이는 1조 분의 1의 확률(1/2⁴⁰)로, 하나님의 역사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말씀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전 1:22)라고 기록된 그러한 성향은 이렇듯 일상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하는 장면(마12:38 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믿은 일(요 2:23) 등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전 관리와 제사 기록에 나타나듯 당시 유대인들에게 표적은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도 표적과 기사로써 유대인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큰 미혹을 행할 것이다. (마 24:24)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성전에서의 기적은 또 있다.
성전 안 지성소의 바로 맞은편에는 '메노라'라고 하는 유대 등잔대가 남쪽 벽에 놓여 있다. (레 24:1-4) 이 등잔대는 일곱 가지가 뻗어 있는데,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 한쪽 끝을 서쪽 방향에 위치한 지성소를 향하게 두었다. 등잔대의 일곱 등잔 중 지성소에 가장 가깝게 놓인 서쪽 등잔은 네르 하마아라비(Ner HaMa'aravi)라고 하여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 이유는 미슈나 타미드(Tamid)에 기록된 등잔대의 관리 절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사장들은 매일 저녁 일곱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붙이는 직무를 수행한다. 본래 아침이 되면 기름이 소진되어 모든 등잔이 꺼져 있어야 정상임에도 네르 하마아라비의 등잔은 이상하게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제사장들이 아침에 등잔대에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교체할 때, 이 네르 하마아라비의 등잔에서 불씨를 취하여 다른 등잔들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즉, 그 등잔은 기름이 다해도 꺼지지 않는 표적의 등잔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빛과 생명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나옴과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상징하였기에 매우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믿기 힘든 기적에 관한 기록이 과거의 영광을 꾸며낸 허구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기적들이 어떻게 소멸해 갔는지 그 어두운 면도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라이타(Baraita)의 가르침: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 40년 동안, (속죄일에 염소의 뿔에 묶었던) 진홍색 양모 끈은 더 이상 하얗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Rosh Hashanah 31b)
"현자들의 가르침: 시몬 하차딕의 임기 동안에는 (속죄일에) 하나님을 위한 제비가 항상 대제사장의 오른손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는 가끔씩만 그러했다.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 40년 동안에는, 하나님을 위한 제비가 대제사장의 오른손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사셀로 보내지는 염소의 머리에 묶었던 진홍색 양모 실도 하얗게 변하지 않았으며, 등잔대(메노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등불도 계속해서 타오르지 않았다." (Yoma 39b)
이러한 표적이 나타나는 빈도는 시몬 하차딕 제사장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점차 줄어들었으며, 마침내 제2성전 파괴 전 40년 동안은 표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시된 세 가지 현상은 성전 제사 시스템 내에서 '하나님의 죄 사함'과 '현존(Shekhinah)'을 확증해 주는 초자연적인 표적들이었다. 탈무드는 성전 파괴 40년 전부터 이 기적들이 중단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위기와 심판의 전조를 설명하고 있다.
표적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중단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딘가 부족하다. 제비 뽑기에서의 표적이 멈추었다고 하려면 사건이 누적될수록 50%라는 자연적 확률에 수렴해야 한다. 그러나 40년 동안 하나님을 위한 제비가 '전혀' 오른손에 들려나오지 않았고 그 확률은 40년 동안 계속 들려나올 확률과 동일한 1조 분의 1의 확률이다. 또한 끈의 색이 더 이상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짙은 붉은 색으로 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그저 중립적인 자연 상태로의 회귀일 뿐이라고 보는 해석의 여지를 차단하는 적극적인 경고의 표명이었던 것이다.
탈무드의 서술 방식은 기록자나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전과도 같은 딱딱한 형식 속에 숨겨진 건조한 문체와 그 이면에 깔린 긴장감을 통해 당시 유대 사회가 느꼈을 극심한 절망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그러한 시기에 또다른 불길한 초자연적 이적이 나타난다.
성전에는 '니카노르의 문(Nicanor Gate)'이라 불리는 성소의 동쪽 문이 있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겔 43:4)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 동쪽 문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오는 통로로 여겨져 특별히 신성시되었다.
제사장들은 밤 제6시에 이 문을 닫고 빗장을 건다. 그런데 이 문이 밤 사이에 저절로 다시 열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 문은 성인 남성 20여 명이 힘을 합쳐야 열고 닫을 수 있는 크고 무거운 황동제 문이었으며, 문에 걸리는 빗장은 거대한 통석으로 된 바닥에 깊숙이 박히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즉, 바람이나 어떤 물리적 우연으로는 결코 열릴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토록 기이한 일이 반복되자 제사장들과 지식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남을 암시하는 지극히 불길한 일로 여겨 절망하였다. 라반 요하난 벤 자카이(Rabban Yohanan ben Zakkai)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성전의 파괴를 예견하기도 했다.
"성전아, 성전아! 어찌하여 너는 이러한 표적들로 스스로를 놀라게 하느냐? 나는 네가 결국 파괴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잇도의 아들 스가랴가 너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지 않았느냐? '레바논아, 네 문을 열어라. 불이 네 백향목을 삼키리로다' (슥 11:1), 레바논은 성전의 은유임." (Yoma 39b)
이 사건은 탈무드뿐만 아니라 미드라시 여러 곳에, 그리고 당시 사건의 가장 직접적인 목격 기록이자 1급 사료인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무지한 백성들은 이를 두고 "여호와께서 복의 문을 열어 복을 넘치게 부어주실 것"이라는 농담같은 낙관론을 펼치고 있었으나, 유대 현자들은 이 현상을 '성전이 스스로 적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성전 파괴의 전조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유대 전쟁사 제6권 5장)
이 불길한 초자연적 현상 역시 성전 파괴 40년 전부터 시작된다. (Yoma 39b)
율법 시대의 제사의 열납을 확증하던 표적과 성전 안의 신령한 임재를 나타내던 기적들이 일제히 소멸하는 동시에,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정확히 같은 시기에 겹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는 성전 파괴의 해인 서기 70년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즉 서기 30년이라는 한 지점으로 수렴된다.
이러한 성전의 표적과 징조는 예수님의 공생애나 십자가 사건, 그리고 교회의 탄생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맞물려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써 모형적 율법의 시대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완성된 희생제로 구현되는 '은혜의 시대'로 돌입하는 시대적 대전환을 알리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대의 전환을 이루는 굵직한 사건들은 서기 26년에서 75년까지의 해당 오나의 마지막 50희년 주기에 걸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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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e of Torah - Onah 8 |
율법과 제사의 유대 성전은 그 완성체이신 메시아 예수가 거부된 상태로는 존재의 의미마저 상실되며, 전환된 시대 속에서 은혜의 교회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대적 전환의 한복판에서 성전의 어두운 앞날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초자연적 표적과 징조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성전의 존립에 관한 주권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로마의 침략과 성전 파괴, 유대인의 이산(Diaspora)은 단순히 인간들이 도모한 결과가 아니라, 과거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듯 이방을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성전의 존립은 초자연적 징표를 통해 그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이 선언되고 있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사람의 힘과 의지만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유대 성전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 그 결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인간의 힘으로 제3성전을 세우려 했던 구체적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
4세기,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불리는 로마 황제는 로마의 국교로까지 세가 확장되고 있었던 기독교에 대해 깊은 반감을 품고 각종 반기독교적 정책을 실시한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수의 예언(마 24:1-2)이 성취된 결정적 증거로 삼는 것에 강한 반감을 품었다. 율리아누스는 그 예언을 무효화함으로써 기독교의 진리성을 무너뜨리고자 했고, 이를 위해 유대인들에게 성전 재건을 허가하며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단행했다.
유대인들의 열광 속에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던 동시대의 이교도 역사가 아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그 현장에서 발생한 초자연적 저항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알리피우스가 속주의 총독의 지원을 받아 활기차게 공사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스러운 화염의 구체들이 성전의 지반 근처에서 끈질기게 터져 나와 작업자들의 접근을 막았고, 그들 중 일부는 불에 타 죽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불가항력적인 화염의 위력에 눌려 결국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아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로마사(Res Gestae)' 제23권)
결국 율리아누스는 성전 재건을 시도했던 서기 363년 바로 그 해, 페르시아 원정 중 창에 찔려 전사한다. 나아가 마르켈리누스는 이 실패한 성전 재건 사업에 잇따른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불길한 징조적 의미를 부여하며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역사적 사건 역시 유대 성전의 재건이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유대 성전을 그저 종교 의례나 정치적 구심점이 되는 상징물 정도로 여기면, 성전의 재건이 정치적 힘이나 타협에 의해 충분히 성사될 수 있는 인간적인 사업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과 관련된 초자연적 현상의 기록들은 그러한 생각은 물론, 악의 세력이 성전 재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흔한 추측들이 여실한 착각임을 보여준다.
로마 황제의 성전 재건 시도 이면에 영적인 배후 세력이 존재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믿지만), 그 존재는 이미 초자연적 개입을 통해 성전 재건이 원천 봉쇄되는 쓴 맛을 경험한 셈이다. 따라서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나 정세 변화만으로 그가 다시 역효과의 위험이 큰 무리한 기획을 반복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대의 주권자가 누구인지 확인한 후, 자신의 패배를 직면하고 '허용된 때'를 기다리는 전략적 퇴각의 상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상 언급한 사례들을 통해, 성전과 교회는 그 존립의 그 시대가 분명히 나누이며 이는 서로 공존이 불가한 영역임이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서까지 계시되고 강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전에 대한 역사는 인간 또는 사탄의 계획이나 의지, 혹은 붉은 암송아지 따위의 출현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도적인 경륜적 허용 안에서만 허락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대 성전의 재건은 교회가 이 세상에서 떠난 후, 즉 시대적 전환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후에야 비로소 허락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율법과 제사를 완성하신 예수를 거부한 채 시대착오적 성전을 세워봤자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성전은 그저 모형에 불과한 전시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차라리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곳은 실질적 영적 숭배의 장소이고 그러한 영적 세계에는 중립지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곳에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존재가 들어서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이는 성경에 정확히 기록된 일이다. (살후 2:4; 마 24:15; 단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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