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 Johnson: The Rapture of the Church
(전략)
켄 존슨 (Ken Johnson): 많은 사람들이 말하죠. 휴거나 비밀휴거 그러니까 환난 전 휴거는 1800년대에 다비(Darby, J.N.)가 만들어낸 교리라고요. 저는 지금도 그 얘기를 계속해서 듣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비 이전의 200년 동안만 해도 환난 전 휴거를 가르쳤던 사람이 최소 수십 명, 많게는 백 명이 넘습니다. 심지어 1세기나 2세기의 초기 교부들 가운데서도 환난 전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이 사실이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하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중세에는 왜 이 가르침이 사라졌느냐?" 그와 관련된 사건이 바로 '네포스의 분열(Schism of Nepos)'입니다. 교부 유세비우스가 기록해 두었죠.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영지주의자들(Gnostics)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가르쳤어요.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면, 그곳에서는 죄를 지어도 된다, 술도 마시고, 쾌락도 누리고, 심지어 70명의 처녀 같은…" 일종의 이슬람식 전설 같은 것들이죠.
교회는 당연히 그런 가르침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요한계시록 전체를 완전히 상징으로만 해석하기 시작했어요. 천년왕국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문자적 성취는 없다, 이런 쪽으로 흐른 겁니다. 그 결과 무천년설(amillennialism)을 가르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네포스(Nepos)는 4세기 이집트의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알레고리스트들에 대한 반박(Refutation of the Allegorists)'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안에서 초기 교부들 모두가 전천년설과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제시합니다.
하지만 여러 일이 겹치면서 그는 결국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수 세기 동안 무천년설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 네포스는 알레고리스트들(상징주의적 해석자)에 대한 반박에서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해석을 비판하며, 초기 교회가 문자적 천년왕국과 종말론적 구원(교회의 보호·제거)을 기대했음을 주장하였다.
게리 스티어먼(Gary Stearman):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놀랍습니다. 왜냐하면20세기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보통, 휴거 논쟁 즉 환난 전이냐 환난 후냐 하는 논의가 아주 최근의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길어야 지난 5-60년 사이에 시작된 논쟁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당신 말처럼, 계속해서 강조해 오신 것처럼, 이 논의는 교회 역사 전체를 통틀어 계속되어 왔다는 거죠.
켄: 맞습니다. 더 놀라운 건, 교부 문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해문서에서도 이미 그런 개념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에세네파 신학의 일부로 나타나요. 정말 놀랍죠. 여기저기서 계속 튀어나옵니다.
게리: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도 진행 중인 하나의 대화 속에 있는 셈이네요. 하나님께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모든 것에 항상 의견 일치를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겠죠. 실제로도 그렇고요. 하지만 이 논의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논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여기에는 언제나 '복된 소망(Blessed Hope)'이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복된 소망'이라는 개념이 정말 좋습니다.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역사상 전례 없는 7년 환난에서 벗어난다는 생각 말이죠. 우리가 그 심판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제게는 정말 놀랍고도 아름다운 희망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일부를 겪을 것이다", 혹은 "전부를 다 겪을 것이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논의 자체가 새로 생긴 게 아니라는 겁니다. 교회 역사 내내 계속되어 온 이야기라는 거죠.
켄: 그렇습니다. 사실 초기 시대의 문헌들을 보면, 대부분의 고대 저자들이 '진노가 임하기 전에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왕국이 세워질 때 다시 돌아온다고 말하죠.
또 몇몇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휴거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하면, 회개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설명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예언을 들어도,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어도 "에이, 난 안 믿어" 하고 지나쳐버리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수백만 명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그제야 생각이 들겠죠.
"잠깐…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때 비로소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고, 결국 주님을 받아들이게 되기를 바라는 거죠. 회개를 위한 목적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게리: 그건 정말 좋은 관점이네요. 다시 말해, 마지막 때까지도 의심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교회가 사라진 뒤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잠깐, 나는 뭔가를 놓쳤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환난 성도들이겠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다섯째 인 아래에서 제단 아래에 있는 성도들 말입니다. 환난 기간 동안 박해받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정말로 굉장잖아요? 교회 시대 이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확장된다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런 논의는 역사 상 또 어디에서 이어져 왔습니까?
켄: 가장 먼저는 사해문서에서 그 흔적을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에녹서에서도 언급되고요, 에스라 묵시록, 갓의 책(Book of Gad), 그리고 여러 다른 문헌들에서도 나옵니다.
그다음에는 초기 교부들이 본격적으로 이어받죠. 이레니우스(Irenaeus), 히폴리투스(Hippolytus) 같은 인물들 말입니다. 이들 모두가 일관되게 교회가 먼저 데려감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는, 데살로니가후서를 보면 휴거가 언제 일어나는지가 굉장히 명확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혼란스러워지는 이유는, 적그리스도가 언제 드러나는지, 또 다른 사건들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빅토르(Victor) 같은 교부는 서기 240년경에 요한계시록 주석서를 썼습니다. 또 에녹서와 여러 교부 문헌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가운데서 나옴(coming out of the midst)', '중간에서 제거됨'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 표현을 휴거로 해석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바울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 정확히 같은 표현을 쓴다는 겁니다. "주의 날, 곧 환난의 때는 적그리스도가 드러나기 전에는 올 수 없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무엇인가에 의해 붙들려 있고, 그 '무언가'가 한가운데서 제거될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하죠. 빅토르, 이레니우스, 그리고 여러 교부들은 이 '가운데서 제거됨'이라는 표현이 바로 교회의 휴거를 가리키는 관용구라고 설명합니다. 정말 놀라운 부분입니다.
게리: 정말 놀랍네요. 지난번에 당신이 여기 오셨을 때도, 사해문서에 포함된 몇몇 고대 문헌들에 휴거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에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셨죠. 그리고 쿰란 공동체에서 에녹의 글을 보존했던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고요. 에녹 자신이 휴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켄: 맞습니다. 에세네파가 가르쳤던 개념을 보면요—물론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거의 적대적인 관계였는데—에세네파는 역사가 여러 '시대'로 나뉜다고 가르쳤습니다. 혼돈의 시대, 율법의 시대, 은혜의 시대 같은 것들이죠. 각각 2,000년 정도로 보고, 그 다음에는 메시아 왕국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 왕국에서는 메시아가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통치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 에세네인이 말하는 '세상의 끝' 혹은 '시대의 끝'이라는 표현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전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문헌들을 읽을 때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간격'들처럼 시대의 끝들을 이어 붙여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한 무리가 있고, 그들은 길에서 치워지듯 제거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그리고 나중에 그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항상 복수형입니다. 히브리어에는 단수, 쌍수, 복수가 있는데, 여기서는 분명히 복수형이 쓰입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두 증인은 결국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부활하죠.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이들은 한 번도 죽지 않은 채 데려감을 당한 사람들의 무리이고, 이제 메시아와 함께 다시 돌아와 왕국을 세우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당연히 천년왕국 통치, 즉 밀레니엄 왕국일 수밖에 없는 거죠.
게리: 당신 책에 인용된 내용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고대 문헌인 에녹서 50장 1~2절의 한 구절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 날에 거룩하고 택함 받은 자들에게 변화[1]가 일어날 것이며 생명의 빛이 그들 위에 머물 것이며 영광과 존귀가 거룩한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악[2]이 죄인(sinners)들을 대적하여 모이는 환난의 날에, 의인들은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이다. 그분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이것을 목격하게 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자기 손으로 행하던 일을 멈추게 하실 것이다."
1. 고전15:51-52
2. 영어의 'evil'은 일반적으로 '악(惡)'의 의미로 사용되나, 에녹서와 같은 유대 묵시문학에서는 도덕적 악이라기보다 종말적 재앙·파멸·심판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로등장한다. 실제로 홍수 심판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동일한 계열의 표현이 쓰이며, 본문 역시 죄인들을 향해 집결하는 심판을 의미하는 문맥이다.
켄: 그렇죠. 하지만 이것은 언제나 사람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려는 주님의 은혜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바울도 비슷한 말을 했잖아요.
"지금 진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네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는 식으로요. (*롬2:4-5)
게리: 특히 이 구절 말입니다. "그분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이것을 목격하게 하시어, 그들이 회개하고 자기 손으로 행하던 일을 멈추게 하실 것이다."
이 개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 휴거는 또 하나의 새로운 경륜을 시작하게 하거든요.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또 한번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건이라는 거죠.
켄: 우리는 하박국의 예언을 알고 있습니다. 2장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메시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거죠. 마지막 경륜, 즉 은혜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 것 말입니다.
게리: 이제 당신이 '휴거(The Rapture)'라는 책을 쓸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건, 당신이 휴거라는 개념을 오늘날의 몇몇 저자들만의 테두리에서 꺼내 놓았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휴거를 지적 논쟁의 대상으로만 다루죠. 모든 문제를 머리로 정리하려고 하고, 결국 지난 60년 동안 쓰인 자료들만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하죠. 그런데 당신은 가능한 한 가장 오래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켄: 네, 2,000년 전이든, 현대이든, 저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사해문서와 초기 교부들의 기록입니다. 왜냐면, 만약 그들이 이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역시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들이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전통이 열두 사도에게서 내려온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사해문서를 남긴 에세네파의 신학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학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문헌들을 살펴보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책들에서도 늘 그래 왔듯이, 이번에는 휴거라는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가 처음으로 "이것이 휴거다," "이건 언제 일어난다," "이 사건의 목적은 이것이다"라고 말한 가장 초기의 기록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쭉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사해문서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초기 교부들 문헌에 나오는 건,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게리: 당신은 또 에스라의 고대 묵시록에서도 인용을 하셨는데요. 그 문헌은 어느 시기의 것으로 보고 있고, 당시 역사적 상황과는 어떻게 맞물립니까?
켄: 전통적으로는 에스라가 쓴 것으로 여겨집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정말 많아요. 예를 들어, 우리가 최근까지 겪고 있는 시리아 전쟁 같은 사건들, 그리고 그것이 곡과 마곡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암시도 담고 있습니다.
최소한 서기 400년경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문헌이고, 그 시기의 예언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현실성을 갖습니다.
그런데 어떤 관점에서 보든, 그 예언들은 '여러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고, 휴거에 대해서 말하며, 땅에서 데려감을 당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신학적으로 매우 일관성이 있다는 겁니다. 비록 '하르파조(harpazo)'나 '휴거(rapture)'라는 어휘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사건 자체를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게리: 그 문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견디고 살아남는 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세상 끝에서 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태어난 이후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데려감을 당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2 EZRA 6:25-26)
그래서 여기 에스라 묵시록을 보면요—물론 저는 이것을 성경과 동등한 권위로 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만—이것은 분명한 역사 문헌이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신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는 분명히 성도들이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희소한 관념이 아닙니다. 여러 문헌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사상이에요.
켄: 맞습니다. 그게 핵심이죠. 에녹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서를 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헌은 콥트 교회에 의해 보존되었고, 사해문서에서도 발견됩니다. 최소한 기원전 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예요.
그래서 이런 문헌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평가를 내리든 간에—초기 교부들 역시 모든 점에서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사해문서에서부터 초기 교회, 중세를 건너뛰어 네포스 사건을 거쳐, 그리고 다비 이전 2-300년 동안의 수많은 인물들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교회가 마지막 때, 7년 환난과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시점에 데려감을 당한다고 말해 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관념은 늘 일관되게 존재해 왔습니다.
게리: 그렇다면 이제 휴거 그 자체뿐만 아니라, 환난 전 휴거, 즉 사건들의 순서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 시대'라고 부르는 이 시기 동안 하나님의 택함 받은 공동체가 존재하고, 어떤 사건이 그들에게 일어난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구조 말입니다. 고대 문헌들을 살펴보면 이런 관념은 얼마나 자주 등장합니까?
켄: 사실 휴거 자체에 대한 언급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언급이 있을 때도, 정확히 언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 일어나는가'를 말하는 문헌들을 보면, 항상 진노 이전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전천년설을 따르던 교부들이—사실상 모두가 전천년설을 믿었죠— 최소한 '진노 전' 혹은 '환난 전'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설교나 해설처럼 조금 더 구체적인 자료들을 보면, 그 시점은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인 에브라임(Ephraim the Syrian)은 교회가 환난 전에 들려 올라갈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레니우스도 마찬가지고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20년 동안 폴리카프(Polycarp)와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폴리카프는 이레니우스를 가르쳤고, 이레니우스는 히폴리투스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사도 요한으로부터 불과 두 세대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전통을 직접 전해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레니우스는 교회가 갑자기 데려감을 당한 뒤 세상이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환난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서기 240년경, 빅토르(Victor)는 요한계시록 주석서를 쓰면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 바울이 말한 '붙들고 있는 것이 제거되는 것', 즉 '데려감'이 바로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의 해석이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의견들이 서로 고립된 게 아니라 일관되게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교부들을 가리켜 "아마 중환난설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후환난설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어떤 표현만 떼어 놓고 보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죠.
왜냐하면 환난 기간에도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부들은 적그리스도가 교회나 성도들, 혹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동일한 교부들'은, 7년 환난 이전에 이미 믿고 있던 자들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고도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이 글들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면 사람들의 오해가 발생합니다. "이 사람들은 후환난설이다", "저 사람들은 다른 입장이다"라고요.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그들의 모든 저작을 전체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참조 영상] Lee Brainard는 이러한 전체를 무시한 잘못된 인용에 대해서 잘 지적하고 있다.
게리: 지금 켄 박사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대화를 입증하는 겁니다. 이 대화는 전혀 새로운 대화가 아니라는 거죠. 오늘 방송에 들어오기 전에 제가 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을 말한 적이 있습니만, 휴거에 대해 제가 가장 압도당하는 지점은, 이것이 완전히 유일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단 한 번뿐인 사건이리는 거죠.
우리가 아는 한, 우주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런 일은 딱 한 번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단 한 순간에 자신의 자녀들, 곧 입양된 가족을 데려가시는 사건 말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말 그대로 밀리초 단위로—그들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전에 일어난 적도 없고, 이후에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도 묘사되지 않습니다. 우주 역사상 단 한 번뿐인 사건이라는 거죠.
이건 정말 경이로운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교회의 휴거? 아, 알죠 알죠" 하는 식으로. 하지만 이건 결코 당연하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압도적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켄: 맞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러 목적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인류 6,000년의 역사가 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대기권과 세상을 정결케 하시는 과정이 있고, 또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기 위한 최후의 기회도 있습니다. 휴거는 이 모든 목적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완벽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왕국이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일어난다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잘 맞습니다.
게리: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계속 보여드리고 있듯이, 이 개념은 교회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언급되어 왔습니다. 선지자들 역시 그것을 내다보고 있었죠. 잠깐 선지자들 이야기를 해볼까요? 많은 선지자들이 아주 명확한 용어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휴거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켄: 맞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그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들려 올라간 사건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들려 올라가기 이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들려 올라가기 전에도 계속해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 것들도 일종의 '휴거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죠.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뒤 갑자기 옮겨진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있는데요.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가서 "왕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 길을 열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친위대장이 사실상 이렇게 말하죠.
"안된다. 내가 왕에게 당신이 왔다고 알리러 갔다가, 왕이 나오기 전에 당신의 하나님이 또 당신을 휙 데려가 버리면, 그럼 내 목이 날아간다."
그래서 엘리야가 말합니다.
"아니다. 이번에는 내가 여기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이 대화 자체가 그대로 성경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것만 봐도, 주님께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정말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열왕기상 18) 엘리야의 승천 이전에 이미 엘리야는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여호와의 영에 의해 초자연적 이동을 한 인물로 널리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게리: 그것은 경비병조차 알 만한 공공연한 일이었다는 거죠.
켄: 네, 다들 알고 있었던 겁니다.
게리: 맞아요. 마치 "엘리야가 나타나면 조심해라. 너 큰일 날 수 있다. 왕 앞에서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게 상식처럼 퍼져 있었던 것처럼요. 이렇게 일상적 대화의 차원으로 내려와 있다는건 놀랍습니다.
켄: 그렇습니다.
게리: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 끄집어내서 설명하는 사람은 켄 존슨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까도 말했지만, 얇은 책 한 권, 제목도 그냥 'The Rapture'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찾기 힘든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켄은 오래된 사본들을 파고들어 살펴보는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럼 이제 묻고 싶습니다. 그런 문헌 탐구 과정에서 주로 어떤 것들을 살펴보십니까?
켄: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오래된 자료들입니다. 요즘은 특히 사해문서에 집중하고 있고, 거기서 언급되거나 연결되는 모든 것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 경력의 대부분은 초기 교부들, 성경 외 문헌들, 역사서 같은 것들을 연구하는 데 쏟아졌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지 하나하나 모아서, 전체 그림을 맞추는 작업이죠.
게리: 그걸 정말 훌륭하게 해내고 계시네요.
지금 제 앞에 성경을 펼쳐 놓고 당신의 주석을 보면서, 또 당신의 책을 떠올리고 있는데요.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교회의 휴거? 난 안 믿어. 그건 후대의 발명품이고 1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갑자기 열광하기 시작한 개념일 뿐이야. 초기 교회나 교부들은 그런 걸 믿지도, 가르치지도 않았어."
하는 이런 식의 주장이 요즘 굉장히 흔하게 나오는데요. 그런 말을 들으면, 당신은 뭐라고 답하시나요?
켄: 그런 분들은 돌아가서 공부를 좀 더 해야 합니다. 네, 늘 다비만 지적하죠. 하지만 우리가 말했듯이, 다비 이전에 이미 휴거를 믿었던 사람들이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가까이도 됩니다. 책 안에 그 명단을 따로 정리해 두었고요.
중세 부분은 건너뛰어야 합니다. 유세비우스가 네포스 분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고, 초기 교부들, 그리고 사해문서에 나오는 여러 문헌들까지 다 함께 놓고 보면 그림이 아주 명확해집니다.
이건 억지로 짜맞출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제가 내용을 조금이라도 비틀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직접 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느 곳에서 설교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서 이렇게 묻더군요.
"당신은 휴거를 믿습니까?"
그래서 제가 "네, 믿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저는 안 믿어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데살로니가전서 4장이나 데살로니가후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바울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세요? 아니면 이미 과거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그냥… 그게 재림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럼 당신은 후환난 휴거를 믿는 분이네요. '휴거를 안 믿는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그러면 다들 놀라고 당신을 이단 같은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러자 그분이 바로 말을 바꾸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후환난 휴거를 믿는 거네요."
그래서 제가 그분과 5분 정도 더 이야기하면서 '진노'의 개념을 설명했더니, 이번에는
"아, 그럼 저는 전-진노(pre-wrath)군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30분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나머지도 다 설명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결국 그분은 이론의 한 부분만 들었던 것이고, 교부들에 대한 잘못된 인용만을 접했을 뿐,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게리: 맞아요. 많은 경우가 전부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대화를 시작해 보면,
"잠깐,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믿고 있는지 한번 정리해 봅시다" 라고 해야 할 상황이 많습니다.
오늘 방송 전에 이야기하면서도 들었듯이, 당신은 실제로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눠 왔죠. 그리고 사실들을 차근차근 제시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게 되요.
"잠깐만요, 저는 사실 환난 전 휴거를 믿고 있었네요. 다만 그걸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당신은 그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 왔죠.
켄: 맞습니다. 바울도 우리가 같은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야 우리가 같은 것을 믿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같은 걸 믿고 있는데 서로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사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게리: '휴거'라는 단어 자체도 참 흥미롭습니다. 헬라어로는 하르파조(harpazo)인데, 아주 강력하게 붙잡아 들어 올려서, 빠르고 단호하게 제거한다는 뜻이죠. 성경이 바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건의 본모습을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켄: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르파조를 깊이 연구합니다. 그러면 정말 명확한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휴거를 설명할 때 이 단어 하나만 썼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휴거를 설명하면서 여러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구원, 구조, 하르파조, 낚아채어 옮김 같은 표현들이죠. 이걸 '복된 소망', '자비'라는 개념과 함께 보고, 이런 표현들을 관용어로 이해하면 훨씬 더 완전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게리: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추정치는 정말 제각각이죠. 그런데 단 1밀리초 안에, 그들 모두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지금은 있었는데, 다음 순간엔 없다."
이것 역시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완전히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어느 시점이 되면 '이제 내 자녀들을 여기서 데려가야겠다. 이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하지만 그 일을 하실 때, 그 자녀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겁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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