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마지막 때의 조감도 |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 요한복음 5:43
다니엘 9:27, 데살로니가후서 2:7의 말씀과 같이 적그리스도가 드러난 이후에 전개될 7년 환난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될 과정, 즉7년 환난기가 어떻게 유도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고찰이 많이 부족하다고 보인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등장한다는 확고한 지점을 기반으로 하여 그가 어떻게 등장할 것인지에 대해 고찰해보면 마지막 때의 모습에 좀 더 개연성이 부여되며 입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7년 환난기의 성립 과정에 대해서 개연성 있는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유대교가 어떤 메시아를 어떤 식으로 기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대교가 거짓 메시아를 수용하고 환난기에 들어가는 과정과 그것이 기독교의 종말론과 얽혀 있는 구조를 시각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로 만들어 보았다. 도표의 위쪽 부분은 기독교, 아래쪽은 유대교의 타임라인이다.
위 도표는 텍스트와 엉켜있는 연결선 등으로 혼란스러울 수 있다. 서로 다른 버전의 이미지들을 마지막 부분에 배치해 놓았으니 참고 바란다. 특히 '뒤틀린 평행 구조'의 부분은 관계 연결선이 제거된 상태로 보는 편이 시각적으로 깨끗하게 느껴진다.
이하는 도표에 번호로 표시된 부분들(1-14)에 대한 각주이다.
1.
유대교에서 어떤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조망하는 것은 마지막 때의 모습을 예상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적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메시아로서 그들의 조건과 기대에 부응하는 존재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전반이 메시아의 임하심을 예언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메시아는 성경의 중심이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지는 가장 근본적인 지점은 바로 이 메시아에 대한 관점이다. 기독교는 모든 예언을 예수 한 분으로 집중시키며, 그분의 시기, 역할, 행적에 따라 각 예언의 묘사가 달라진다고 본다. 즉 한 사람의 다른 측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서 초림에 적용되는 예언과 재림의 예언이 나뉜다.
반면 유대교는 메시아의 임함을 한 번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미움받는 메시아, 고난의 메시아 예언은 메시아가 아닌 이스라엘 민족이나 의인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거나 두 명의 메시아라는 방식으로 그 관념을 수용한다.
2.
두 명의 메시아 - 메시아 벤 요셉, 메시아 벤 다윗
유대교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메시아의 신적 지위에 대한 주장에 있다. 예언에 나타나는 메시아의 양 측면이 모두 한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할 경우 이는 곧 부활, 재림과 같은 인간 능력을 초월한 관념, 즉 신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메시아는 절대적으로 온전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유대교의 교리는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을 두 명의 메시아를 세움으로써 해결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고난과 죽음의 메시아 상은 메시아 벤 요셉(요셉의 자손 메시아)이라는 인물에게, 왕으로서 통치할 승리자의 메시아 상은 메시아 벤 다윗(다윗의 자손 메시아)에게 각각 귀속시키는 것이다.
메시아의 고난 예언의 주체를 이스라엘 민족이나 의인들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러한 견해들은 메시아 예언의 정체성 자체를 잘못 인식하고 있으므로 논외로 한다.
유대교에서는 어느 시점부터 메시아 벤 요셉이라는 유형론적 해석에 의한 인물이 제시되며, 그를 요셉의 일화와 연결되는 스가랴 12:10의 말씀과 연결시킨다. 그 시점은 명백히 기독교의 성립 이후이며, 형제들에 의해 팔린 요셉이 이방의 통치자가 되었다가 결국 형제들을 구원하게 된다는 유형적 메시아 예언이 드러난 이후이다.
유대 전통은 스가랴서의 한 환상에서 발견되는 네 명의 메시아적 인물을 언급한다. 서기 4세기 하나 바르 비즈나(Hana bar Bizna)는 의인 시므온의 전승에 근거하여 이 네 인물을 메시아 벤 다윗, 메시아 벤 요셉, 엘리야, 그리고 의로운 제사장이라고 밝힌다. 이들 각각은 메시아 시대를 여는 과정에 관여하는 인물로 설명된다. (바빌론 탈무드, Sukkah 52b; 위키피디아 'Messiah ben Joseph' 항목 참조)
그러나 히브리 성경 어디에서도 요셉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라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으며, 벤 요셉이라는 명칭도 그 출처와 근거가 극히 불분명하다. 하나 바르 비즈나의 의인 시므온 인용은, "그의 말에 따르면" 하는 식의 구전의 주장이며 실질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의인 시므온의 시대에 '메시아 벤 요셉'이라는 명칭이나 개념이 존재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이는 2세기 바르 코크바 반란에 의해 체계화된 것으로 본다. 바르 코크바 사건에 의해 메시아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이 무너졌으며, 그를 지지했던 종교 지도층의 권위도 땅에 떨어져 그것을 실패가 아닌 예정된 종말론적 단계로 승화시켜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요셉의 일화에 예언적으로 나타나는 고난의 메시아상을 유대교의 실패하는 메시아에 연결시킬 수 있었는가, 그리고 거기에 왜 요셉의 이름을 차용하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바르 코크바의 사례는 요셉의 일화가 지닌 패턴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이방에서 통치, 이후 이스라엘의 구원 등) 즉, 왜 요셉이라는 명칭이 실패한 메시아 사건에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 요셉의 일화는 메시아에 대해 명시적으로 기술하는 형태의 예언이 아니라, 예표적 인물의 삶에서 형성되는 서사가 성취 이후에야 예언적 의미를 드러내는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유형론적 예언은 우연히 적중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의 복합적 구조를 갖는다. 예언이 실현되기 전에는 그것이 예언인지조차 인지하기 어렵고 사후적으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유대교가 요셉 일화의 예언적 성취로서의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형제들에 의해 팔려 고난받는 요셉이라는 인물에게서 메시아의 징후를 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메시아 벤 요셉이라는 유대교의 개념은 예수가 요셉 일화의 성취임이 발견되고 난 후에 그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메시아 벤 요셉의 역할 - 성전의 재건과 마지막 날 최종 전쟁에서의 죽음
유대교 전통은, 메시아 벤 요셉을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할 메시아로 제시하며, 그의 죽음을 스가랴 12:10*의 예언과 연결한다. (Sukkah 52a,b) 메시아 벤 요셉은 마지막 때에 악의 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방과의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며,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통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탈무드에 대한 라시(Rashi)의 주석은, 그가 '성전 재건'을 돕게 되므로 그를 '장인'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나흐마니데스(Nachmanides) 역시 그의 성전 재건 역할에 대해 주석하였다.
* 고난과 죽음의 메시아라는 관념은 말일 예언의 일관된 사건 흐름의 맥락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들은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고 왕으로서 영원히 통치할 승리자로서의 메시아만을 일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스가랴의 해당 예언은 환난기에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인지하고 뉘우치며 애곡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일 뿐이며, 이는 이스라엘(요셉의 형제들)이 예수(요셉)를 알아보고 통곡하는 요셉 일화의 장면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4.
유대교 역시 구약에 근거하여 엘리야의 재림을 믿고 있다. (말 4:5)
그는 자신이 엘리야의 재림임을 보이기 위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는 등 엘리야의 이적을 행할 것이다. (계 13:13) 요한계시록은 이 인물을 거짓선지자로 규정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게 하고 짐승의 표를 강제할 것이다. 메시아의 산통기에는 극심한 가뭄과 그로 인한 대기근이 먼저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각주 7 참조) 이는 거짓선지자가 3년 반 동안의 가뭄을 내리게 했던 엘리야를 모방 재현하는 상황을 암시한다. (약 5:17, 눅 4:2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참된 두 증인 역시, 이후 진짜 환난기에 하늘을 닫아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게 하는 엘리야의 이적을 행한다. (계 11:3, 6)
거짓 선지자-거짓 메시아 출현과 두 증인-그리스도 재림, 이처럼 고스란히 닮아 있는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교의 메시아 산통기 및 그에 이어지는 적그리스도 통치기는 성경이 말하는 야곱의 환난기와 메시아의 천년왕국과 최대한 대칭을 이루는 방식으로 미혹의 역할을 할 것이다.
유대 전통에서는 엘리야가 마지막 때를 선포하는 전령의 역할을 한다고 본다. 유대교에 있어서 그 마지막 때는 그들의 메시아가 등장하기 전이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의 출현 시기는 유대교의 메시아 산통기의 초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거짓성취 - 가짜 곡과 마곡의 전쟁
유대교에서 말하는 마지막 전쟁, 즉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성경이 실제로 가리키는 곡과 마곡의 전쟁과 동일하지 않다. 그 이유는, 유대교의 곡과 마곡 전쟁이 거짓 메시아의 등장과 그에 의한 이스라엘의 거짓 평화 및 회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성경이 말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참된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과 회복을 성취하는 결말로 직결되는 구조를 지닌다. (에스겔 39장)
기독교에서 에스겔의 곡 마곡 전쟁을 7년 환난기 이전에 실현될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에스겔에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7년 동안 무기를 소각하고 7개월 동안 시체를 장사하게 되는데, 7년 환난기 후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에서 그러한 일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전쟁 무기를 소각하는 기간 7년이 이후의 대환난기 7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겔39:9, 12) 또한,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상태에서 전쟁이 시작된다는 점을 들어, 이를 대환난기의 혹독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도 제시된다. (겔 38:8)
이러한 해석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무기 소각 기간 7년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1) 7년 동안 무기를 소각하는 일이 그리스도 재림 이후의 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다.
2) 무기소각의 7년이 반드시 환난기의 7년이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1)은 자의적인 전제에 불과하며, 2)는 '7'이라는 숫자에만 의존한 피상적 연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스라엘이 평안하게 거하는 상태가 (겔 38:8, 11) 7년 환난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발상은, 적그리스도가 평화 조약을 맺고 통치할 환난기 전반기의 상황을 간과한 것이다. 오히려, 평화롭고 안전할 때 멸망의 길로 들어가는 것은 대환난기의 전형적 흐름이다. (살전 5:2-3, 마 24:38) 이스라엘에 접근하는 과정에 있어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파괴자가 아닌 속이는 자이다. 게다가 계시록에 나타나는 바벨론 음녀의 교만과 그에 업힌 상인들의 부유함은 적그리스도 통치 하의 번영한 세계까지 암시하고 있다. "환난기는 항상 혼란한 위기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에스겔 38장의 이스라엘의 평안함은 환난기에 맞지 않는다" 라는 주장은 그 전제가 무너지면 결론도 함께 붕괴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곡과 마곡의 전쟁이 환난기 이전에 있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른 말일 예언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쟁 직후 곧바로 메시아에 의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이 예언의 핵심 구조이며 예언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메시아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 멸망하고 그에 이어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에스겔 39장이 명확하게 제시하는 이러한 전개는 구약의 다른 말일 예언들의 전개와 일치한다. 이러한 예언적 시기는 성경 전체 중 7년 환난기, 주의 날이라는 단 하나의 시기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또한, 성경은 메시아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전쟁 무기가 제거되는 장면을 동일한 7년 환난기에 대한 다른 예언에서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미 4:3, 사 2:4, 호 2:18, 슥 9:10) 이 구절들 어디에서도 무기의 폐기가 초자연적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암시는 찾을 수 없다. 에스겔에서 제시되는 무기의 소각 역시 다른 말일 예언과 함께, 같은 시기, 같은 사건을 예언하고 있을 뿐이다.
요한계시록 20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은 7년 환난기에 있을 에스겔의 전쟁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사건이다. 이는 해당 구절 자체의 서술로 입증된다. (천년왕국의 말기) 그런데 그 구절이 '곡과 마곡'을 무엇으로 정의하는지에 주목해보면, '곡과 마곡'이라는 용어는 '땅의 사방 백성,' 곧 여러 이방 민족을 통칭하는 상징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과 마곡이라는 용어를 창세기의 곡과 마곡의 후손 민족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서 설득력을 잃는다.
결국, 곡과 마곡의 전쟁이 7년 대환난기, 곧 주의 날이 이전에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성경 본문 자체보다는 어떤 특정한 프레임에 의해 요구된 해석이라는 추측 밖에는 낳지 않는다. 그 프레임은, 곡과 마곡의 전쟁에 의해 등장할 거짓 메시아를 이스라엘과 전 세계의 메시아로 인식시키려는 유대교의 교리 구조에 포개진다. 다시 말해, 야곱의 환난기에 예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참된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예언 구조가 전혀 다른 메시아 기대의 프레임에 의해 덧씌워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도표에서, 기독교의 7년 환난기가 어떤 형태로 유대교의 메시아 산통기로 전사(轉寫)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구조적 위험성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
달력의 왜곡: 다니엘 9장의 연대 조작
올해(서기 2026년)를 창세 후(AM) 5786년으로 제시하는 현행 유대력은 서기 2세기 유대교 랍비 요세 벤 할라프타(Yose ben Halafta)가 집필한 '세데르 올람 라바'(Seder Olam Rabbah)에 기반한다. 이 저술은 창세로부터 제2성전 파괴 이전까지의 유대 연대기로서, 현행 유대력(AM) 계산과 탈무드 시대사 해석의 기틀이 된다.
그에 따라 이 연대기는 탈무드에서도 자주 인용되며 유대교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다니엘서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25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니라.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26 육십이 이레 후에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단 9:25-27)
다니엘 9:24-27의 예언은 예언의 대상과 시기 산정의 기점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루살렘 중건의 영이 날 때"(느 2)를 기점으로 하여, 예언된 기간 "7주+62주" 후, 예언 대상인 "메시아"가 끊어질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랍비 요세는 계산의 기점을 "제1성전의 파괴" 시기로 설정한다. 이는 본문이 명시한 기준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역사적 사건이다. 출발점이 달라지면 예언의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이는 단순한 세부 조정이 아니라 예언의 틀을 재배치하는 해석이다.
다음으로는 7주-62주-1주의 배열 문제이다. 다니엘 본문은 7주와 62주를 먼저 연결한 뒤("일곱 이레와 62 이레"), 그 이후의 사건을 서술한다. 그러나 세데르 올람은 7주를 포로 기간에, 1주를 귀환기에, 62주를 제2성전 존속 기간에 배치한다. 즉, 본문의 7-62-1 구조를 7-1-62의 배열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배열은 본문이 제시하는 순서와 전혀 다른 것이다.
연대 축소의 문제 또한 심각하다. 세데르 올람은 제2성전의 존속 기간을 약 420년으로 본다. 그러나 일반적인 역사학적 계산에 따르면 제2성전은 기원전 516년경 봉헌되어 서기 70년에 파괴되었으므로 약 586년간 존속하였다. 이 차이는 세데르 올람이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기간을 대폭 축소한 데서 발생한다. 실존했던 페르시아 왕들을 누락 시키거나 두 명의 왕을 동일 인물로 간주하는 방법 등을 통해 200년 이상 존속하였던 페르시아 제국의 연대를 무려 34년으로 압축, 결과적으로 160년 이상 축소한다. 그 결과 현행 유대력과 실제 창세력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 |
| Only 4 Persian Kings? |
세대르 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예언의 대상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다니엘 본문은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자)"의 시기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나 세데르 올람은 이 기름부은 자를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무리한 관점을 취한다. 그 결과, 시기의 산정으로써 메시아를 특정하는 해당 구절의 예언은 성전의 역사로 전락한다.
예언의 분명한 메시지와 역사적 연대를 이처럼 크게 왜곡해 놓고도 아무런 수정이나 재검토의 움직임이 없이 천년 이상을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메시아 예언이 가리키고 있는 인물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다니엘 9장의 예언이 가리키는 시기에 해당하는 메시아 후보자는 역사적으로 예수 한 분 이외에는 없다. 다음은 예언의 메시아 도래 시기에 대한 랍비들의 발언이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지식을 밝혀 주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비밀이기 때문에, 지혜자들(랍비)은 메시아의 도래 날짜를 계산하는 일을 금하였다. 이는 배우지 못한 대중이 종말의 때가 이미 왔다고 보이는데도 메시아의 징조가 없는 것을 보고 미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Maimonides: Iggeret Teiman, 3장)
이 때들(다니엘의 70주)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Rabbi Judah: Babylonian Talmud, Sanhedrin)
나는 모든 성경을 살펴보고 탐구해 보았으나, 메시아의 도래 시점이 분명히 정해진 것을 찾지 못하였다. 다만, 예언자 다니엘에게 전해진 가브리엘의 말, 곧 다니엘 예언 9장에 기록된 말씀 외에는 그러하다. (Rabbi Moses Abraham Levi)
이와 같이, 정해진 때(메시아의 도래 시기)를 계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 현자들은 선언하였다(산헤드린 97b): ‘마지막 때(메시아의 도래)를 계산하려는 자들의 영혼은 사라질지어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설명한 대로, 그 문제의 일반적 개념을 믿으며 기다려야 한다. (Maimonides: Mishneh Torah, Hilkhot Melakhim Umilchamoteihem 12장)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메시아가 올 때까지 회개(teshuva)를 하는 것뿐이다. 이는 구속을 위해 예정된 모든 날짜가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Babylonian Talmud: Sanhedrin 97b)
구속(메시아의 도래)을 위한 모든 기한이 이미 지났으며, 이제 그 문제는 오직 회개와 선행에 달려 있다. (Babylonian Talmud: Rabbi Rabh)
구속의 시기가 지났다는 탄식과 메시아 도래 시기에 대한 계산을 금한다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다니엘서와 같은 공개적인 예언서에 주어진 시기에 대한 계산을 금한다는 것은 예언의 존재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그들은 금지의 이유로, 바르 코크바와 같은 잘못된 메시아 운동의 실패로 인해 유대 공동체가 파멸적 피해를 입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바르 코크바 등의 메시아 운동에는 어떠한 예언적 시기의 계산에 근거한 주장도 개입되어 있지 않았을 뿐더러, 그 발생 시점 또한 이미 다니엘서가 가리키는 지점을 한참 지난 이후였으므로 예언의 적용 자체도 불가능했었다. 결국, 서로 관계가 없는 사건과 예언을 함께 연결시키고 나서, 동종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예언을 봉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논리의 파탄을 현재까지 수 세기 이상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예언이 진짜로 가리키는 대상(메시아-예수)에 대한 논의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공회당과 종교 모임 등 유대 사회에서는 이사야 53장의 낭독마저 금기시 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6.1
AM 3950-4000년: 8회차 오나(Onah-500년)의 마지막 50희년 주기
예수의 공생애와 십자가 희생, 부활, 오순절 사건에 의한 교회 시대의 시작; 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유대 성전의 파괴와 얌니아 공회에 의한 율법 시대의 공식적 마침표에 이르기까지, 율법으로부터 은혜로의 '시대 전환'을 실현시킨 모든 주요 사건들은 창세 후 4000년을 마감하는 마지막 주기 50년에 걸쳐 일어났다.
이 도표의 AM 연대는 Ken Johnson 박사의 계산에 따른 것으로, 그의 설명에 따르면 ±1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다른 방식의 계산을 따르면 수 년의 차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6.2
AM 5951년: 6000년을 마무리하는 12회차 오나의 마지막 50희년 주기 시작점
6.1의 전례를 고려한다면, 교회시대의 종식(휴거), 7년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등장, 예수의 재림, 이스라엘의 회복 등 말일 예언과 교회 시대로부터 메시아 통치 시대로의 '시대 전환'에 관련된 모든 일들 역시 이 50년의 기간 안에서 성취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도표에 제시된 AM 5951, AD 2026과 같은 연도는, 어떤 예언적 사건이 정확히 그 해를 기점으로 발생한다는 의미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 계산상으로 창세 후 12번째 오나의 마지막 50년 주기가 2026년에 시작된다는 점을 표시한 것이다. 율법시대에서 은혜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 전환기의 전례를 보더라도, 예수의 공생애 시작과 같은 시대개막적 사건이 50년 주기의 첫해에 정확히 일치하여 일어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7.
메시아의 산통기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라는 구절(마 24:8)의 '재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ὠδίν으로,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겪는 해산의 고통, 산통을 의미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의 '해산 고통'이 바로 이 단어이다. '재난'이라는 번역으로는 원문, 산통의 함의와 연계성이 상당 부분 훼손된다.
여기서 함의라 함은, 해산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산통의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고통은 점점 커진다는 비유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연계성이란, 예수께서 사용하신 이 표현이 독자적인 비유가 아니라, 말일 예언 전반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산통' 개념의 인용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즉, 마태복음 24:8의 말씀은 구약의 말일 에언들이 동일하게 가리키는 시기의 현상을 설명하는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호와여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사 26:16-17)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륙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렘 4:30-31)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 하는 여인 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렘 30:6-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미 4:9-10)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유대교 전통에서도 이러한 말일의 이스라엘(야곱)의 환난 서사가 메시아를 맞기 위한 통과 과정이라는 명확한 인식이 존재하며, 그것을 Chevlei Moshiach, 메시아의 산통이라고 부른다. 그 7년*의 기간에는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혹독한 메시아의 징조(Ikvot Meshicha)가 다음과 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탈무드 산헤드린 97a-98b)
1) 가난의 확산과 물가 폭등, 2)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 3) 질병과 전염병, 4) 도덕적 붕괴와 사회 혼란, 5) 국제 정치적 혼란, 6) 열방 간의 전쟁 - 곡 마곡의 전쟁, 7) 메시아의 최종 구원: 평화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귀환 - 메시아 시대의 시작
* 이 7년이 문자적인 7년임을 확정하는 교리는 없다. 각 단계적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기도 하고 일부는 실제 7년의 기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 일들의 진행 순서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보인다.
"라브 요세프가 말하였다: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여러 안식년 주기들이 이미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메시아는 오지 않았지 않은가?
아바예가 말하였다: 여섯째 해에 하늘의 음성이 있었으며, 안식년에 전쟁이 있었는가? 더 나아가, 이 모든 현상들이 바라이타에 열거된 순서대로 모두 일어났는가?" (산헤드린 97a)
사건들의 배열은 마태복음 24장, 요한계시록의 인 재앙, 에스겔의 곡 마곡 전쟁의 서술과 상당 부분 평행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러한 유사성의 근본 원인은 물론 기본적으로 원전(성경)의 동일함에 있으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하여 미혹이라는 큰 위험이 자리잡게 된다.
유대교의 메시아 산통기는 가짜 환난기로서 큰 미혹의 역할을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똑같은 성경 구절을 제시하면서 "이 인류적 대위기가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대환난기이다."라는 목소리가 횡행할 것이며, 그에 이어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아가 우리를 구원하였다. 그가 메시아이자 재림예수다."라는 외침이 따를 것이라는 소리다.
환난기가 참된 성경적 환난인가, 혹은 다른 해석 전통에 따른 환난인가 하는 문제는, 그 환난의 종결 시점에 누구를 메시아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판단될 것이다. 환난 끝에 예수님이 아닌 자가 메시아로서 오면 거짓환난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겪을 진정한 산통(환난기)은 그들의 메시아가 가짜임을 성전에서 스스로 드러낼 때부터 시작될 것이다. (단7:25, 단9:27, 마24:15, 살후 2:4)
8.
유대교의 메시아
유대교에서 메시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1) 다음의 조건을 만족하면 메시아의 후보가 될 수 있다. 즉 최소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1.1) 다윗 왕가의 후손일 것: 성전 파괴 이후 공식적인 혈통 기록의 보관과 유지가 중단된 상황에서, 오늘날 다윗 왕가의 계보를 증명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하여 유대교 내에는 몇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1.1.1) 계보를 비공개적으로 보존해 온 가문이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
1.1.2) 계보의 직접적인 확인은 어렵더라도, 다른 핵심적 조건을 성취하면 그 결과로써 혈통이 입증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견해: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실제로 귀환시키는 불가능에 가까운 사역을 완수한다면, 그 인물이 다윗의 후손임이 사실상 증명된다는 논리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후건긍정적 결과론으로, 온전한 증명으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혈통 입증 문제와 관련하여 고고학적 대발견이나 초자연적 계시 등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견해도 제기되어 왔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여러 추측이나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예컨데, 다윗의 혈통을 주장하는 문서의 발견 가능성, 또는 어느 가문이 예수의 혈통과 연결된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튜린의 수의로부터 혈흔을 채취, 유전자 기술을 이용하여 예수의 생물학적 후손을 탄생시키는 식의 괴담과 같은 설도 들려온다. 이런 이야기들은 타당성을 떠나서, 다윗 혈통의 입증의 조건이 그만큼 비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하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겠다.
1.2) 스스로 토라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이스라엘의 토라 준수를 인도함
1.3)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는 적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여 승리함 (곡 마곡의 전쟁)
2) 다음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해도 메시아로 인정받지 못한다. 즉, 결정적 조건이다.
2.1) 성전 재건: 예루살렘에 물리적 성전을 재건
현 시대와 같은 중동 정세에 있어서 그러한 일은 극단적인 혼란기에나 가능하거나, 극단적 혼란기를 유발하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예상된다. 어느 쪽이든 '메시아 산통기'라는 시기적 배경에 있어서는 어울리는 듯하다.
성전의 재건은 메시아 벤 요셉이 성취할 과업이다. 그리고 그는 진짜 7년 환난기 이전에 있을 유대교의 곡 마곡 전쟁에서 죽는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드러날 때 성전은 이미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전의 시대적 의미와 때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 제3성전, 사람의 힘으로 지을 수 있는가
2.2)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귀환시킴: 이 조건은 현실적으로 성취가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으로서, 이를 실현하면 다른 어떤 증거 보다도 강력한 메시아의 증거가 된다.
이 예언은 두 번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면 더 이상 이방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당 예언은 오로지 참된 메시아인 예수에 의하여 그의 재림 후 온전히 실현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예언에 대한 다른 자들의 성취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예언의 성취는 거짓으로 위장될 것이라는 소리다.
이 조건은 현실적으로 성취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 성취에는 현실의 범주를 초월하는 환경이 요구된다. (거짓)메시아의 등장을 위해서 혹독한 인류적 대위기가 있어야 함은 이전 글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바로 이 '민족 귀환'이라는 절대적 메시아 조건에서, 그러한 대위기가 발생해야만 하는 다각적 필연성 중에서도 핵심적인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구조적으로 파산을 향해 달릴 수 밖에 없는 전 세계의 부채 기반 경제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며, 그 진짜 목적은 세계를 파탄낸 구세대의 악한 시스템을 청산하고 신세계질서를 도입하기 위함이다. 이떄 구악을 청산하고 신세계질서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이스라엘의 메시아, 전 세계의 구세주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계획된 파산이 낳을 또다른 결과, 즉 메시아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체적 기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구적 규모의 경제 파탄의 주범으로 연준(Fed)을 위시한 국제 유대 자본, 유대 금융세력이 지목되고 그들의 악행들이 대대적으로 폭로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강도 높은 반유대주의가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박해 환경은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등 떠미는 강제적 귀환 운동으로 이어진다.
시오니스트들에게는, 이미 유대인들의 정착 환경을 악화시키는 공작을 세계 각지에서 자행해온 역사가 있다. 유대인들을 이스라엘 국가로 귀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동족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마키아벨리적 수법이다. 메시아의 직접적인 역사에 의하지 않은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 및 민족의 귀환, 이러한 정치적 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하레디 랍비들은 시오니스트들의 그러한 행태에 강도높은 비판을 해왔다.
마지막 때에 전 세계적 파국을 조성하게 될 모든 큰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면밀하게 설계되어 왔으며, 그 최종 목적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메시아를 세우는데 있다. 세계 경제의 붕괴는 유대인들의 귀환이라는 강력한 메시아 조건을 통과하기 위해서도 이용될 것이다. 사탄과 그 하수인들이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고의로 문제를 꾸며내는 식의 '병주고 약주기' 전략에 대해서는 이전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2.3)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주권적 왕국을 회복
3) 기타
3.1) 유대교의 메시아는 철저히 인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처럼 자신이 하나님과 동격임을 주장하거나 신성을 암시하면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대교의 그러한 기대에 맞추어 그들의 메시아는 신성을 나타내지 않고 스스로 순수하게 인간임을 드러내면서 올 것이다. 그러나 7년 환난기의 중반에 돌변하여 살후 2:4; 단 9:27, 11:36-37에 묘사된 일을 성취하고 유대인들은 마 24:15-16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9.
유대교의 메시아 시대
유대교에서 말하는 메시아 시대는 성경의 말일 예언이 묘사하는 그대로이므로 기독교에서의 예수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예수가 아닌 다른 자가 메시아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스라엘에게로 올 메시아는 유대 전통이 기대해 온 메시아 시대의 시대상을 비슷하게라도 성취해야만 그들에게 메시아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7년 환난기 중 전반부의 평화와 번영의 모습은 그러한 이유에 있어서도 그 타당성이 엿보인다.
다음은 한 유대교 사이트에서 제시하는 메시아 시대의 모습이다.
1) 성전이 존재하는 시대 (겔 37:26-28)
2)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과 회복 (사 11:11-12, 16; 사 43:5-6; 암 9:14-15; 렘 23:7-8; 겔 39:25, 27-29*; 겔 20:32-37, 40-42; 겔 36:22-25)
* 곡과 마곡의 전쟁과 직결된 구절이다. 곡 마곡의 전쟁을 이스라엘 민족의 귀환이라는 메시아 사역(조건)에 연결 시켜 전쟁에 잇따라오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음을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곡과 마곡 전쟁을 다른 말일 환난기 예언들과 분리해서 보지 않으며, 그렇게 같은 범주로 묶는 시각 자체만큼은 올바른 것이다.
각주 5에서 논한 바와 같이, 기독교 측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 예언만을 따로 빼내어 환난기 이전의 시기로 끌어다 놓는 시도에는 바로 이와 같은 유대교의 메시아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는 위험성이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3) 죄와 악이 없는 세상 (겔 37:23; 습 3:13; 슥 13:2; 말 3:19*; 사 60:21; 렘 50:20)
* 기독교의 구절 구분법으는로 말 4:1에 에 해당
4)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보편화 된 세상 (사 11:9; 합 2:14; 사 40:5; 사 52:8; 렘 31:32-33*)
* 기독교 성경의 렘 31:33-34에 에 해당
5) 열방이 하나님을 숭배하게 된다. 메시아는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할 것이다. (습 3:9; 사 2:2-3; 미 4:1-2; 슥 14:9)
적그리스도에 의해 전 세계적 단일 종교가 세워지고 그 중심이 예루살렘이 되는 모습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6) 세계적 평화와 조화 (사 2:4; 미 4:3; 호 2:18; 슥 9:10); 이러한 평화의 회복은 자연계에도 나타날 것이다. (사 11:6-9; 사 65:25)
7) 죽은 자의 부활 (사 26:19; 겔 37:12-14; 단 12:2)
8) 질병과 죽음이 종식된 복된 이상향:
메시아 시대에는 궁극적인 육체적, 영적 복락이 나타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치유될 것이다. 눈먼 자와 귀먹은 자, 말 못하는 자, 저는 자, 그 밖에 어떤 흠이나 장애를 가진 자든지 그 모든 장애로부터 치유될 것이다. (사 35:5-6; 사 25:8)
안락한 삶이 있을 것이다.(Eliyahu Rabba ch. 4.) 육체적 필요는 다른 이들에 의해 돌보아질 것이다. (사 61:5)
땅은 비상한 풍요를 드러내어 모든 종류의 소산을 넘치도록 내고, 나무들은 날마다 익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Shabbat 30b; Ketuvot 111b.) 시온의 광야는 "에덴 같게, 그 사막은 하나님의 동산 같게" 될 것이다. (사 51:3; 겔 36:29-30; 암 9:13)
"그때에는 기근도 전쟁도 없고, 시기나 다툼도 없을 것이다. 모든 좋은 것들이 풍성히 주어지고, 모든 진미가 흙처럼 흔하게 될 것이다." (Hilchot Melachim 12:5. Cf. Midrash Tehilim 87:3 (“gold and silver will be like dust”).)
메시아 시대의 놀라운 사건들과 상태는 그 이전에 일어났던 어떤 기적들, 심지어 이집트 출애굽과 관련된 기적들까지도 완전히 압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신적 축복들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것들은 더 높은 목표를 향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가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거나 이방인들을 다스리기 위함도 아니고, 열방 가운데 높임을 받기 위함도 아니다. 또한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함도 아니다.(Hilchot Melachim 12:44) “어떤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많은 소산과 재물을 가지고 말을 타며 포도주와 노래에 빠지기 위함도 아니다.” (Rambam, Perush HaMishnah, Introduction to Sanhedrin ch. 10) 오히려 지금 우리로 하여금 토라와 미츠보트를 온전히 전념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들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함이다. (Hilchot Teshuvah 9:26) 우리의 열망은, 우리를 억압하고 방해하는 자 없이 토라와 그 지혜에 전적으로 헌신할 자유를 얻는 데 있다. 우리는 의인들의 회합이 있고, 선과 지혜와 지식과 진리가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때를 갈망한다. 그때는 토라의 계명들이 무기력이나 게으름이나 강요 없이 지켜질 시대이다.
하나님을 아는 일이 온 세상의 유일한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위대한 지혜자들이 되어, 지금은 감추어진 것들을 알게 되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으로 그들의 창조주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땅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기를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리라" 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사 11:9)
이상 8)에서 묘사하는 메시아 시대의 모습은 상식적으로는 믿기 힘든 일들로 가득찬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의 상당 부분을 문자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은 의도적으로 감추어져 왔으며, 때가 도래하면 메시아의 선물로 공개될 것이다. 그 시기에는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밀스러운 일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마법처럼 보이는 놀라운 기술을 선사하면서 새 시대를 만들어갈 메시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다음의 글을 참조: '무한 에너지 - 금지된 특허 [1/2], [2/2]'
10.
다음 글을 참조:
음녀와 바벨론
11.
야곱과 요셉의 일화에서 나타나는 7+7년 패턴
다음 글을 참고:
'마지막 때의 7년-7년 모델'
12.
휴거의 시기에 관해서는 전환난, 후환난 등 여러 견해가 있다. 도표는 전환난, 그 중에서도 휴거 갭의 견해를 차용한다. 그 근거에 대해서도 역시 다음 글을 참고 바란다:
'마지막 때의 7년-7년 모델'
13.
철과 진흙의 시대
다음 글을 참고:
'마지막 때의 7년-7년 모델'
13.1
다음 글을 참조:
다니엘 7장, 네 짐승
14.
도표의 우측, 말일–천년왕국 부분을 크게 보면 윗 부분의 기독교의 말일–천년왕국 요소들이 아래쪽 유대교의 말일 체제로 고스란히 투영되듯 옮겨지는 형태를 볼 수 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들이 시간만 7년 앞당겨져 구현되는 것이다. 유사한 구조가 먼저 거짓성취 되는 이런 구조는 큰 미혹으로 작용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예언이 눈 앞에서 성취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며 그 길의 끝은 멸망이다. (요 5:43)
이러한 평행 구조는 원천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시인하는가 부인하는가 하는 지점으로부터 발원한다.
일부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메시아 시대, 즉 기독교의 7년 환난기 중 이러한 구조를 깨닫고 도표의 윗쪽 부분으로 합류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메시아가 성전에 앉아 자신이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자라고 하는 망발을 목격하고 나서 도망하고 박해받을 것이며 (살후 2:4; 마 24:15-16) 마침내는 예수님이 자신들이 찌른 메시아였음을 올바르고 바라보고 회개한다. 이로써 7년의 흉년기 한가운데서 드디어 요셉(예수님)을 알아보고 통곡하고 재회하는 예언이 성취된다. 이것이 요셉의 일화와 스가랴 12장 10절 말씀의 참된 성취이다.
![]() |
| 도표: 뒤틀린 평행 구조 - 큰 미혹 |
![]() |
| 도표: 관계 연결선 |
![]() |
| 도표: 텍스트 |
.






No comments:
Post a Comment